산재급여 받았어도 손해배상은 별도 인정… 대법원 “같은 성질 손해에서만 공제”
건설현장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 근로자가 산업재해보험 급여를 이미 받았더라도, 그 금액을 무조건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또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할 때 여러 신체감정 결과가 있을 경우 중복 여부를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됐다.
대법원은 2020년 6월 25일 선고한 판결(2020다216240)에서 건설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근로자 A씨와 배우자가 공사 발주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판결에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A씨는 하도급 공사를 수행하던 중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두통과 기억력 장애, 인지기능 저하, 성격 변화 등 후유장해가 남았다. A씨와 배우자는 공사 발주 회사를 상대로 민법 제757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송 과정에서 A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을 판단하기 위해 신경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등 여러 진료과목의 신체감정이 이루어졌다. 원심은 각 감정 결과를 서로 다른 장해로 보고 중복장해율을 적용해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각 감정서에 기재된 내용이 모두 두부손상으로 인한 인지기능 장애와 성격 변화 등 정신장해를 평가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서로 다른 장해가 아니라 중복감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원은 복수의 신체감정 결과에 중복이나 누락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감정보완이나 사실조회 등을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산재보험 급여와 손해배상액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준을 제시했다.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손해를 전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성질이 동일한 손해 사이에서만 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휴업급여는 휴업기간 중 일실수입에 대응하는 것이므로 그 기간의 손해액에서만 공제해야 하며, 그 초과분을 성질이 다른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산업재해 이후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산재보험 급여의 공제 범위와 노동능력상실률 평가 기준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두부 손상이나 뇌손상 등 복합적인 후유장해 사건에서 신체감정 결과를 그대로 합산하는 방식에 대해 법원이 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