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판례] “기존 심장질환 있어도 과로로 악화됐다면 산재”…대법원이 밝힌 업무상 재해 판단 기준
기존 질병이 있는 근로자가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도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업무가 직접 질병을 발생시킨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업무로 인해 기존 질병이 악화됐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1990년 9월 25일 선고한 대법원 90누2727 판결에서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기존 심장질환을 악화시켜 근무 중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사건은 한 경비원의 사망 사건에서 시작됐다. 해당 근로자는 사업장에서 경비 업무를 담당하며 근무해 왔다. 경비 업무는 일반적인 주간 근무와 달리 주야 교대 근무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근무 형태는 인체의 생리 리듬에 맞지 않는 근무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근로자의 건강 상태였다. 이 근로자는 평소 지방심이라는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심은 심장 근육에 지방이 침착되는 질환으로 심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는 정상적인 근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였고 경비 업무를 계속 수행해 왔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 약 3개월 동안 근무 환경에 변화가 있었다. 해당 기간 동안 업무량이 증가하면서 근무 강도가 높아졌고 야간 근무 역시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업무 환경 속에서 근로자는 상당한 과로 상태에 놓이게 됐다.
여기에 경비 업무 특성상 지속적인 긴장 상태와 정신적 스트레스도 함께 발생했다.
결국 근로자는 근무 중 갑작스럽게 쓰러졌고 사망했다.
유족들은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 과중과 과로로 인해 발생했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행정기관은 기존 심장질환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행정소송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먼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상 재해의 의미를 설명했다. 법에서 말하는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가 업무 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부상이나 질병,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의미한다.
따라서 업무와 재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설령 근로자가 기존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업무상의 과로가 그 질병의 발생 원인에 겹쳐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과로로 인한 질병에는 기존 질환이 업무의 과중으로 인해 급격히 악화된 경우도 포함된다고 명확히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근로자의 업무 환경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경비 업무는 주야 교대 근무 형태로 이루어졌고 이는 인간의 생리적 리듬에 맞지 않는 근무 형태였다.
또한 사망 전 약 3개월 동안 업무량 증가로 인해 상당한 과로 상태에 있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대법원은 이러한 업무 환경과 과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인 지방심의 진행을 촉진하고 증세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은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를 가지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법리가 함께 제시됐다. 바로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에 관한 행정기관의 내부 기준의 법적 효력에 관한 부분이다.
당시 노동부는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에 관한 예규를 마련해 행정 실무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예규가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동부 예규가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 처리 기준에 불과할 뿐 법률적 구속력을 가지는 규범은 아니라고 밝혔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 여부는 행정기관 내부 기준이 아니라 법률과 판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례는 산업재해 인정 기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기존 질환이 있는 근로자의 사망 사건에서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판례로 평가된다.
산재 실무에서는 기존 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재 신청이 불승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존 질환이 있더라도 업무 과중으로 인해 질병이 악화됐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행정기관 내부 기준만을 근거로 산재 인정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번 판례는 산업재해 판단에서 근로자의 실제 업무 환경과 업무 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