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판례] 중대재해·산안법·업무상과실치사 모두 성립…대법원이 밝힌 중대재해 형사책임 기준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를 두고 법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와의 관계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중대재해 사건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서로 상상적 경합 관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2023년 12월 28일 선고한 대법원 2023도12316 판결에서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에 대해 이러한 법리를 명확히 제시했다.
사건은 한 사업장의 야외 작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였다. 피해 근로자는 철제 방열판 보수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해당 작업은 크레인을 이용해 중량물인 방열판을 들어 올린 뒤 위치를 조정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작업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던 섬유벨트가 끊어지면서 철제 방열판이 그대로 낙하했고, 그 아래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를 덮쳤다. 결국 근로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고 당시 피해 근로자는 원청 회사 소속이 아니라 도급계약 관계에 있는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였다. 그러나 작업이 이루어진 장소는 원청 회사의 사업장이었고 작업 환경 역시 원청의 관리 범위에 포함되는 공간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 원청 회사 대표이사이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인 피고인에게 세 가지 범죄를 적용했다.
첫째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였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었다. 중량물 취급 작업을 수행하면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었다. 경영책임자로서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 세 가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피고인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에서 핵심 쟁점이 된 것은 이 세 가지 범죄가 각각 별개의 범죄로 평가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의 행위로 평가해야 하는지 여부였다.
형법 제40조는 하나의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상상적 경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여러 죄가 동시에 성립하지만 가장 무거운 형으로 처벌하게 된다.
대법원은 먼저 상상적 경합에서 말하는 1개의 행위의 의미를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행위란 법률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하나의 행위로 평가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를 하나의 부작위 행위로 보았다.
피고인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중량물 취급 작업에 대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동시에 경영책임자로서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이행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동일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서로 다른 행위라기보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 하나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서 요구되는 안전조치 의무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되는 안전 확보 의무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결국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죄가 모두 성립하지만 이들 범죄는 서로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중대재해 사건에서 형사책임 구조를 설명하는 중요한 판례로 평가된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산업재해 사건에서 여러 법률이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러한 범죄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명확히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이 판결은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뿐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역시 형사책임 판단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산업현장에서는 도급 구조가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이 판례는 도급 구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원청 경영책임자의 안전관리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산업재해 예방의 핵심은 현장의 안전조치와 함께 조직 차원의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판결로 평가된다.